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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법률프리즘 2018.07.2.자 "증거를 알아야 재판이 보인다." 변호사 최재홍

작성일자 2018-06-27
분류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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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자연의 최재홍 변호사가 2018. 7. 2.자 주간경향 1283호에 투고한 글입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시작된 민사법정, 졸음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변호사들을 당혹스럽게 했던 재판이 있었다.
원·피고 모두 변호사 없이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진행 중인 사건이었고, 내용은 대여금 청구였다. 비교적 간단한 사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60대 정도로 보이는 원고는 피고가 돈을 빌려갔는데 주지 않아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하고 있었고, 피고는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대여금 사건의 경우 원고는 돈을 빌려주었고, 변제일은 언제이며, 이자는 얼마로 약정했다는 주장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차용증과 같은 서류를 제출하거나,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의 사실확인서를 제시하든지, 증인의 증언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위 사건의 원고는 이러한 증거 없이 주장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재판부는 원고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증거를 제출하라고 소송지휘권을 행사했는데, 원고는 “우리 마을에 가면 내가 저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거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냐”고 오히려 화를 냈다. 자신은 절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면서


소송을 처음 해본 사람들은 사실관계 확정을 위한 입증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주장만 하면 재판부가 판단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판사는 신이 아니다. 당사자 간에는 경험에 의하여 명백한 사실도 판사는 현장에 없었기에 양측의 주장을 듣고 증거에 의하여 누구 말이 더 믿을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재판은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장과 증거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이고, 대부분의 사건은 치열한 법리다툼보다 사실관계 확정에 따라 승패가 나뉠 수밖에 없다


물론 누가 보더라도 현저한 사실은 불요증 사실(不要證 事實)이라고 하여 특별히 당사자가 입증하지 않도록 민사소송법은 제288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불요증 사실이란 것도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4대강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에서 4대강 사업에 반대했던 변호사들과 전문가들은 ‘고인 물은 썩는다’는 당연한 명제에 기반하여 보를 설치할 경우 4대강에 정체수역이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녹조가 창궐하는 등 수질 악화가 명백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당시 정부 측 증인으로 나선 전문가들은 보 설치로 수량이 풍부해지고, 수질개선을 위한 하수종말처리장 시설 등을 추가로 설치할 경우 오히려 수질은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재판부는 그러한 정부 측 주장을 신빙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4대강의 현실은 위 명제가 당연한 것임을 다시 확인해주고 있을 뿐이다. 당연한 명제가 재판과정에서는 치열한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 재판을 이기기 위하여는 어떠한 증거를 어떻게 수집하고 제출하여야 할까?

증거 중에 증명력이 가장 높은 것으로는 서증을 들 수 있다. 위 대여금 사건에서 차용증과 같은 서증보다 대여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더 우월한 증거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차용증과 같이 증명하고자 하는 법률적 행위(권리관계)가 그 문서 자체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서를 법원은 ‘처분문서’라고 한다. 법원은 처분문서가 제출되면 그 기재내용을 부인할 만한 명백한 반대증거가 없는 한 처분문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인정하여야 하며, 만일 이를 임의대로 해석하여 판결할 경우에는 해당 판결은 채증법칙을 위반한 것으로서 취소 대상이 된다. 이러한 처분문서에는 계약서, 유가증권, 유언서, 해약통지서, 합의서 등이 있다

법원에 처분문서가 제출될 경우 상대방은 어떻게 다툴 수 있을까? 하나는 가장 어렵지만 그 내용을 다투는 방법이다. 그러나 처분문서의 내용을 다투기 위하여는 동등한 증거가치가 있는 처분문서를 제시하여 상대방이 제출한 처분문서는 효력을 상실하였다고 주장하는 것만이 의미 있는 주장이 된다. 예를 들어 5000만원을 빌려주는 차용증을 작성하였다가 3000만원 빌리게 되어 3000만원으로 차용증을 다시 작성한 경우, 상대방이 당초 차용증을 제시하며 5000만원을 청구하는 경우에 사실 차용금은 3000만원에 불과하다는 2차 차용증을 제출하는 것이다. 또한, 처분문서가 상대방의 기망에 의하여 작성된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최근 필자가 진행한 소송에서는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며 부제소합의서를 작성한 경우가 있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회사가 퇴직금 등에 대한 소송 제기를 봉쇄하기 위해 노동자를 불러 일정 금액을 지급하면서 부제소합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용감한(?) 노동자가 몇 명이나 될까? 다행히 한 노동자가 부제소합의서 서명과정을 녹음하였고, 회사 측이 부제소합의를 하더라도 퇴사 후에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는 회사가 우월적 지위에서 노동자를 기망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재판부는 위 주장을 받아들여 처분문서인 부제소합의서의 효력을 취소하였고, 회사는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다음으로 처분문서가 허위로 작성되거나 위조된 경우이다. 민사소송법은 제358조에서 사문서는 본인 또는 대리인의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이 있는 때에는 진정한 것으로 추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359조에서는 문서가 진정한 것인지는 필적 또는 인영을 대조하여 증명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결국 그 문서가 허위, 위조된 것임을 주장하는 쪽에서 필적감정 또는 인영감정을 통해 입증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소송을 지연하기 위해 명백하게 본인의 것이 맞음에도 이를 부인하고 문서가 진정한 것인지를 다툴 경우에는 민사소송법 제363조 제1항에 의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결국 어떠한 법률관계를 체결할 경우에는 이를 문서로 남겨두어야 하고,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해당 문서를 서증으로 제출해야 한다.

서증보다 증명력은 낮지만, 최근에 많이 이용되는 증거방법으로는 녹음이 있다. 대화자 간 녹음은 위법이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화과정에서 언급된 내용은 자백과 동일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취록이 제출되더라도 상대방은 말싸움을 하기 싫고, 처분문서가 있으니 상황을 회피할 목적으로 말한 것일 뿐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을 할 수 있기에 녹음을 할 때에는 입증하고자 하는 사실을 명확히 특정하여 상대방이 직접 본인의 입으로 말하게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외에도 증거방법으로서는 전문기관에 의하여 진행되는 감정과 재판부가 직접 현장을 확인하거나, 동영상을 재생하여 확인하는 검증의 방법도 있다. 다양한 증거방법들을 어떻게 수집하고 활용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 제출할 것인지는 소송기술이기도 하다. 다만 증거는 어디까지나 실체적 진실을 재판부에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므로 본인의 기억을 최대한 복기하는 것이 먼저이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판사에게 설득하여야 한다. 객관적 진실보다 강한 주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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