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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법률프리즘 2018.06.18.자 "범죄인들의 도피처로 이용되는 심신장애" 변호사 최재홍
작성일자 2018-06-25분류 | 언론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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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806111544541&code=115#csidx5e5e83958745939bd35950394311975 |
법무법인 자연의 최재홍 변호사가 2018. 6. 18. 주간경향에 투고한 글입니다. 재벌 갑질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는 이명희는 특수폭행 등 7가지 범죄사실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서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다는 소견서를 법원에 제출하였다. 분노조절장애는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볼 수 있다. 성범죄, 교통사고, 상해사건 등에서 자주 등장하여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오는 범죄자들의 주장 중 대표적인 것이 음주 만취상태에서 범행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술을 먹어서 기억이 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범행을 하였다는 그들의 주장은 범죄사실 자체는 인정하지만 자신도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형사책임을 감면해달라는 것이다. 심신미약을 야기한 원인으로 주장되는 것은 술 이외에도 최근 이명희씨가 법원에 제출한 소견서 상의 분노조절장애와 같은 정신병이 있다. 왜 범죄자들은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우리의 형법이 특정한 경우에 형사책임의 감면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 “난 제 정신이 아니었다” 주장 어떠한 행위가 범죄로서 국가의 사법작용에 의하여 처벌되기 위하여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해당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규정이 있어야 하고, 해당 행위가 법률이 규정한 구성요건에 해당하여야 한다. 그러나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가해자의 행위가 정당방위, 긴급피난, 정당행위 등 위법성을 조각하는 사유에 해당한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가해자에게 형사책임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 위법성까지 인정되면 모든 행위가 형사처벌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 형법체계는 범죄자에게 형사책임 능력이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에 따른 형의 감면을 규정하고 있다. 가해자가 위 규정에 해당하면 범죄행위를 하더라도 처벌을 할 수 없거나, 처벌의 정도가 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형법 제10조 제3항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의 상태를 야기한 자의 행위는 심신장애에 따른 형사책임 감면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의도적으로 심신장애 상태를 만들어 범죄행위를 한 범죄자에 대하여는 형사책임을 감면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러한 예로는 범죄행위 대상을 물색한 후 범죄행위를 하기 전에 일부러 술을 마신 경우, 평소 술을 먹게 되면 폭력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나 성범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불구하고 술을 먹고 범죄에 이르게 된 경우가 있다. 실제 형사재판 과정에서 형법 제10조가 적용되는 모습을 살펴보면, 음주상태에서 평소 성주물성 장애가 있는 범죄자가 건물 외벽의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가 베란다를 통해 빌라에 침입하여 여성 속옷 등을 훔치다가 집주인에게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된 사건에서 법원은 “심신장애는 정신병 또는 비정상적 정신상태와 같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외에 이와 같은 정신적 장애로 말미암아 사물에 대한 변별능력이나 그에 따른 행위 통제능력이 결여 또는 감소되었음을 요하므로,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라고 하여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 변별능력과 행위 통제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무생물인 옷 등을 성적 각성과 희열의 자극제로 믿고 이를 성적 흥분을 고취시키는 데 쓰는 성주물성애증이라는 정신질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절도 범행에 대한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다만 그 증상이 매우 심각하여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이 있는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거나, 다른 심신장애 사유와 경합된 경우 등에는 심신장애를 인정할 여지가 있으며, 이 경우 심신장애의 인정 여부는 성주물성애증의 정도 및 내용, 범행의 동기 및 원인, 범행의 경위 및 수단과 태양,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범행 및 그 전후의 상황에 관한 기억의 유무 및 정도, 수사 및 공판절차에서의 태도 등을 종합하여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하면서,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심신장애 규정이 바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조두순 사건과 같이 음주 만취상태에서 형법 제10조 제3항을 배제하기 위한 검찰의 주장 입증이 부실하거나 실패할 경우 법원은 형사책임을 감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법의 흠결을 극복하기 위해 2010년 4월 15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어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범한 때에는 심신장애 감면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조두순 사건과 같이 검찰의 부실한 대응으로 인하여 범죄자의 형사책임이 감경되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었다. 장기간 반복적인 폭행과 폭언은 인정 안 해 음주로 인하여 발생된 교통사고에 대한 형사처벌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운전을 하게 되어 교통사고를 야기한 경우 처벌을 감면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현행법 체계상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도로교통법 제44조가 이를 규제하고 있다. 이 규정은 술에 취한 상태를 인정하는 기준을 운전자의 혈중 알코올농도 0.05% 이상이라는 획일적인 수치로 규정하여, 운전자가 혈중 알코올농도의 최저기준치를 초과한 주취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한 경우를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도로에서 주취상태에서의 운전으로 인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한편 음주상태에서 교통사고를 야기하여 피해자가 다친 경우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 11에 따라 가중처벌된다. 위와 같이 성범죄나 교통사고의 경우 음주나 약물 등으로 심신장애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형사책임의 감경사유로 규정하지 않거나 오히려 가중처벌 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범죄자들은 자신의 형사책임을 감경하기 위해 굳이 음주 등으로 인한 심신장애 주장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법률규정이 없는 일반 범죄의 경우이다. 재벌 갑질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는 이명희씨는 특수폭행 등 7가지 범죄사실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서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다는 소견서를 법원에 제출하였다. 분노조절장애는 갑작스런 분노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그 원인으로는 호르몬 분비 이상, 감정 조절과 관련된 뇌 영역의 기능 이상, 어린 시절 학대와 같은 가정적 요인 등 다양한 요인이 있으며, 일응 심신미약에 해당하는 정신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분노조절장애라 하더라도 심신미약이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2017년 11월 인천지방법원은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질병을 앓고 있는 노숙인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다른 노숙인들을 수차례 폭행한 것과 관련하여 “피고인은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질병을 앓고 있던 중 폭행을 하였으나, 여러 건의 폭행 전과가 있어 준법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사회 적응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같은 범행을 반복하였으므로 일정한 기간 사회에서 격리해 법의 엄정함을 깨닫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하였다. 정신병의 경우 무조건 형사처벌이 능사일 수는 없다. 범죄의 직접적 원인이 정신병이라면 이를 치료하지 않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으로는 재범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간 반복적인 폭행과 폭언을 방치하여 왔고, 충분히 이를 치료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고 범죄를 계속하였다면 이는 위험을 예견하면서 스스로 범죄로 나아간 것이기에 심신미약 감경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 최재홍 법무법인 자연 변호사·민변 환경보건위원회 위원장> |